미국의 3대 군용기 제작사 중 세번째라 할 수 있는 노스롭 그라만사는 노스롭사가 주도적으로 그라만사를 끌어들여 설립한 항공방산업체이다.
1995년 통페합 이전의 노스롭사는 B-2A 스텔스 폭격기와 YF-23 스텔스 전투기를 내놓은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업체였다.
그러나 YF-23의 패배와 B-2A 스텔스 폭격기의 소량 생산으로 타격을 받으면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해군 항공기 전문 제작업체 그라만사와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실 통합의 길로 접어들게 한 위기는 YF-17 전투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만약 1970년대 중후반 YF-17 전투기가 미공군에 채택되었다면 노스롭사는 지금의 록히드 마틴사가 누리는 위치에 있을 것이다.
또한 패자 부활전 시도였던 수출형 F-18L 전투기는 또다시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맥도넬 더글라스사의 F/A-18과 노스롭사의 F-18L 호넷 전투기
F-18L은 F/A-18과 달리 노스롭사가 주계약사로 해외판매를 노리고 계획한 수출형으로 나름 의욕을 가지고 계획을 진행하였다.
1974년 부터 1976년 사이에 진행된 미공군 및 나토4개국 차기 전투기 프로그램에서 패배해 설자리를 잃고 미해군을 상대로 재도전을 하기 위해 맥도넬 더글라스사와 손잡고 부계약자의 자리로 한발짝 물러 난 노스롭사는 F-18L로 해외시장에서 부활을 꿈꾸었다.
노스롭사는 20세기 말까지 125개국 공군을 대상으로 약 2천여대의 수출가능성을 노린다는 영업멘트를 날렸다. (동업자인 맥도넬 더글라스사는 당연히 싫어했다)
F-18L이 기존 F/A-18과 차이점을 둔 재설계 방향은 함상운용을 위한 접히는 주날개가 필요없었으며 기동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대형 플랩과 에일러론을 대체하고, 미공군 규격 파일런으로 2개를 증설하고 여기에 미해군 사양의 315갤런 외부 연료탱크 대신 미공군 규격의 610갤런으로 교체하는 변화를 주고 무거운 항모 착함용 전방 랜딩기어를 공군용으로 교체한다.
무장계통은 윙팁에 사이드 와인더 미사일 뿐만 아니라 스패로/스카이 플래쉬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장착이 가능하도록 재설계 하였다. 레이더는 미공군의 F-16A/B에 채택된 경량형인 APG-66을 장착하고 전방 랜딩기어 안쪽으로 채프/플레어/재머를 장착하거나 1천파운드의 연료탱크를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YF-17의 양산형 규격으로 F-17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F-18L의 이륙중량은 2,200-2600파운드(LB)로 F/A-18A 호넷 전투공격기보다 경량화 되었으며 무장탑재력은 40%, 항속거리는 100%로 증가시켰다.
1978년 미해군이 F-4 팬텀과 A-7 경공격기를 하나의 기종으로 교체하는 차기 전투공격기 사업으로 맥도넬 더글라스사의 F/A-18A/B를 채택하면서 노스롭사가 꿈꾸던 F-18L은 서서히 물거품이 된다. 사실 노스롭사는 1976년 YF-16에 패배한 직후 급히 맥도넬 더글라스사와 손을 잡아 미해군의 대규모 획득소요에 뛰어 들면서 별도의 수출형인 지상발진 공군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이것은 결국 맥도넬 더글라스사의 경영진에게 이중적인 행동으로 비추어지고 차후에는 해군형인 F/A-18A/B의 내부 경쟁자가 될 것을 우려하여 적극적인 죽이기 작업을 한다.
결국 해외수출 실패
제너럴 다이나믹스사에 패배한 1976년 직후 YF-17( P530 코브라 모델)로 이란 공군에 250대를 판매하려는 영업을 했으나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중단된다.
같은 시기에 캐나다 국방군의 차기 전투기 사업이 발표되어 노스롭사는 발빠르게 YF-17에 캐나다 국방군 표식을 한 기체를 공개하였으나 역시 나중에 손을 잡은 맥도넬 더글라스사는 미해군형의 F/A-18A/B를 그대로 판매하기를 원하면서 1980년 4월 10일 희망을 접게 된다.
캐나다 국방군이 F/A-18A/B를 선정해버리자 노스롭사는 F-18L을 사줘야 하는게 아니냐는 불만을 표출했으나 역시 묻혀 버리고 만다. 이어서 호주,스페인 공군이 캐나다 국방군과 같은 동일한 선택을 하면서 노스롭 경영진이 마지막으로 파키스탄 공군에 F-18L을 제안하는 상황에 이르자 미국 행정부가 개입하면서 이것 역시 제너럴 다이나믹스사의 F-16A/B로 정리된다.
미국 행정부는 카터 시절에서 레이건 시절 사이 여러종류의 해외수출용 전투기에 대해 고민을 해왔다. F-16을 다운 그레이드 한 F-16/79 부터 F-18L,F-20A 등이 존재했으나 결국 F-16 시리즈를 해외판매용으로 집중하면서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1970년대 초반 미국의 무기금수조치를 우려한 이스라엘이 프랑스 미라주 전투기를 카피한 크필을 내놓아 1970년대 후반부터 수출시장에서 혼선을 주기 시작했으며 대만역시 무기금수조치를 우려하여 IDF 경국 전투기 개발이 이루어지는등 국제 전투기 시장은 복잡하였다.
또다른 한편에서는 스페인이 아음속 전투기 및 훈련기 시장을 노리고 C-101의 개발을 서독과 미국의 지원으로 내놓어 기존 영국,프랑스의 아음속 전투기 시장을 넘보게 된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복잡한 시장의 흐름이 지속되다가 1989년부터 급속히 정리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
[디펜스 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