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0분을 기해 격렬한 공격준비 포격과 함께 북한군은 38도선 전역에서 남침을 감행했다.
제105 전차여단의 T-34/85 전차들도 6월 18일부터 자력 주행과 화차 적재를 통해 남하하여 6월 20일까지 각 보병사단에 배속되었다.
당시 북한군 제1 보병사단은 문산-고랑포 축선을, 제3 보병사단이 철원 축선을, 제4 보병사단이 연천, 의정부 축선으로 진격해 서울을 점령하도록 되어 있었다.
1, 3, 4, 6 보병사단을 휘하에 거느린 제1 군단장 김웅(金雄) 중장은 자신감에 차 있었고 동부전선의 제2 군단장 김광협 중장 역시 휘하의 제2 보병사단(사단장 “리청송” 소장)과 제5 보병사단(사단장 “김창덕” 소장), 제12 보병사단(사단장 “전 우” 소장) 및 독립 전차연대를 앞세우고 군단 주둔지인 강원도 화천을 출발해 김종오 대령의 제6 보병사단 “청성부대”가 지키고 있던 춘천, 홍천을 점령한 후 남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를 막아야할 한국군의 상황은 엉망진창이었고 서부전선에 투입된 제105 전차여단의 T-34/85 전차 120대는 굉음을 울리며 38도선의 철조망을 엿가락 구부리듯 짓이겨버린 후 남진(南進)했고 제1, 3, 4 보병사단의 보병과 Su-76 대전차 자주포가 그 뒤를 따랐다.
T-34/85 남쪽으로!!
느닷없이 감행된 북한군의 전면 기습 남침 공격으로 한국군 수뇌부는 난리법석이 났고 시시각각 전선에서 올라오는 보고로 인해 통신망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특히 북한과 한국군의 제1 보병사단이 격돌한 문산~고랑포 지구의 격전은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 그 자체!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 사단장 백선엽 대령( 1920~, 만주 군관학교 9기, 군사영어학교 졸업, 제3 보병여단 참모장, 국방경비대 사령부 정보처장, 제1 보병사단장, 제1 군단장, 육군참모총장 역임, 대장 예편 )은 격렬한 공격준비 포격 이후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최 광 소장의 북한군 제1 보병사단을 맞아 결사적인 방어전을 펼쳤지만 선두에서 돌진해 오는 제203 전차연대의 T-34/85를 효과적으로 격파할 수 있는 대전차 병기가 전무했다.
중과부적의 국군의 대전차 병기
당시 한국군이 보유한 대전차 병기는 미국제 57mm M1 대전차포와 M1 2.36인치 바주카포!
두 병기 모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전차를 상대로 적잖은 활약을 했지만 이번 상대는 대전차 소총으로도 관통 당했던 일본전차도 아닌 T-34/85라는 게 문제였다.
제1 보병사단 예하 제11, 12, 13 보병연대의 병사와 하사관들은 M1 2.36인치 바주카포와 M1 대전차포를 이용해 어떻게든 T-34/85를 격파해보려 했지만 피탄 경사장갑은 45mm 두께의 3배에 달하는 방어력을 발휘해 북한군 전차병들을 보호해주었다.
계속되는 M1 바주카포의 피격으로 차내에 굉음이 울려퍼지자 북한군 전차병들은 신경질적으로 주포와 차체 전방에 거치된 DT 기관총을 난사해대는 한편 위치가 발각된 바주카포 사수들에게 85mm 포탄세례를 퍼부었다.
백선엽 대령은 사단 사령부가 설치된 파주초등학교 앞산에 올라 전황을 살펴봤지만 예하 3개 보병연대는 당장 퇴각하지 않으면 현 위치에서 전멸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제1 보병사단이 버틸 수 있었던 점은 임진강이라는 천혜의 장애물과 더불어 전장인 파주~문산 지역에 북한군의 주공이 집중되지 않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군의 주력은 바로 동두천~포천 축선에 집중되었기 때문인데 이 지역은 당시 30세의 젊은 장군이었던 유재흥 준장( 일본 육군사관학교 56기, 군사영어학교 졸업 )의 제7 보병사단 “칠성부대”가 담당하고 있었다.
문제는 제7 보병사단 역시 충분한 전력으로 전투에 임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
6월 1일 육군본부에서 하달된 일선 명령 제43호에 의거한 부대 이동 지시로 예하 제3 보병연대[ 연대장 : 이상근 중령 ] 3,050명이 수도경비사령부 예하로 예속 변경되는 대신 충청남도 온양에 주둔하고 있던 제2 보병사단 “노도부대” 예하 25 보병연대[ 연대장 : 김병휘 중령 ]가 배치되려던 찰나에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제7 보병사단은 예비 연대없이 1, 9 보병연대 및 제5 포병대대, 공병대대 등 사단 직할대만으로 북한 제1 군단 주력을 막아야 했다.
북한군의 대규모 포격
6월 25일 새벽 동두천에 주둔하고 있던 함준호 대령의 제7 보병사단 1보병연대는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북한군 제1 군단 예하 17 독립 포병연대의 공격 준비 포격을 받았다.
BM-13 “카츄샤” 132mm 로켓과 M1938 122mm 곡사포, Zis-3 76.2mm 사단포 및 82mm, 120mm 박격포에서 발사된 포탄들은 고지대와 저지대의 능선을 따라 구축된 진지들을 강타했고 제7 보병사단은 육군본부에 긴급 타전했다.
“적 포탄이 현재 사단 전 지역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제105 전차여단 예하 제107, 109 전차연대의 T-34/85 전차병들은 해치를 열고 나와 아군 포병대의 포격 섬광(閃光)을 감상하고 있었다.
부대 정면의 제7 보병사단 5포병대대[대대장 이규삼 소령]로부터 날아오는 반격탄(反擊彈)은 거의 구경조차 할 수 없던 반면 제17 독립 포병연대와 제3, 4 보병사단의 포병연대가 방열한 76.2mm, 122mm 곡사포의 포격은 칠흑(漆黑)같은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게 바꾸었다.
북한군 T-34/85 전차들의 공세
마침내 새벽 5시를 기해 각 대대장들이 출동 명령을 내렸고 전차병들이 탑승한 T-34/85의 V-2-34 520마력 디젤엔진에서 굉음이 울렸다.
이미 제1 보병사단을 타격하고 있던 제203 전차연대 및 제206 차량화 보병연대에 이어 제107, 109 전차연대의 T-34/85들이 공세에 돌입하는 순간이었다.
그 시각 여단장 류경수 소장은 제4 보병사단장 리권무 소장에게 경례를 올린 후 소련제 GAZ 지프에 탑승한 채 묵묵히 전방으로 달려 나갔다.
독일의 침략에 맞섰던 독소전 종전 이후 5년 만에 자신이 애인처럼 동행했던 ‘전우’ T-34/85가 이번엔 침략전쟁의 선두에 서는 광경은 쉽사리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디펜스투데이]